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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22.

    by. clarajournal

    목차

      생물학

       

      『스파이더맨』의 생물학: 거미 인간은 가능한가?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 장르의 전성기를 열며 전 세계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평범한 청년 피터 파커는 유전자 조작을 받은 슈퍼 거미에게 물린 후, 초인적인 힘과 반사 신경, 벽을 기어오르는 능력, 손목에서 분사되는 거미줄까지 갖춘 '스파이더맨'으로 각성한다. 그러나 과학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이러한 변화는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번 글에서는 『스파이더맨』의 생물학적 설정을 현대 과학의 시선으로 분석하며, 유전공학, 생체 모방 기술, 신경 생리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거미 인간'이라는 개념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본다.


      1. 거미 유전자와 인간의 융합 – 유전공학적으로 가능한가?

      스파이더맨의 기원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특수한 능력을 가진 거미"의 물림으로 설명된다. 이는 인간과 거미의 유전자가 융합되며 생긴 결과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인간(영장류)과 거미(절지동물)는 약 10억 년 전에 진화적으로 분기한 전혀 다른 계통이다. 유전자 배열, 전사 인자, 후성유전적 조절 방식이 크게 달라 자연적인 유전자 융합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공적으로는 가능한가? 현대의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Cas9를 이용하면, 특정 유전자를 다른 생물에 삽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형광 해파리의 GFP 유전자를 생쥐에 삽입하여 빛나는 쥐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단일 기능 단백질 수준의 유전자 조작일 뿐, 거미의 복합적인 생리 구조와 능력을 사람에게 통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극히 어렵다.

       

      또한, 외부에서 삽입된 유전자가 인체 전반에 퍼져 발현되려면 생식세포뿐 아니라 모든 체세포에서 동시적으로 안정적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이 역시 현행 기술로는 어렵다. 유전자 운반체로 사용하는 바이러스 벡터는 범위가 제한적이고, 유전자 발현의 제어도 불완전하다.

       

      요약하자면, 스파이더맨처럼 단 한 번의 물림으로 인간 유전체가 재구성되고 능력이 각성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2. 거미줄 분사 – 손목에서 실크를 뽑아내는 것이 가능한가?

      영화 속 스파이더맨은 손목에서 거미줄을 쏘아낸다. 현실의 거미는 복부 끝에 있는 실크샘(spinneret)에서 거미줄을 만들어낸다. 이 거미줄은 스파이더 실크 단백질로, 강철보다 강하고 탄력성도 뛰어나 미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이 실크 단백질을 인간이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이미 몇몇 연구소에서는 염소나 박테리아에 거미 유전자를 삽입해 실크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양이 적고 실크 구조가 인공적으로 조절되기 어려워 상업화는 더딘 상태다.

       

      또한, 손목에 거미줄 샘을 갖추려면 막대한 단백질 합성 기관과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근육 운동과 동기화된 정교한 방사 메커니즘까지 감안하면, 이는 거의 신체 구조의 전면 개편 수준이다. 따라서 영화 속 설정은 현실보다는 SF에 가까운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

       

      다만, 거미줄을 인공적으로 쏘아내는 장치는 실제로 개발이 진행 중이며,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발사기(web-shooter) 개념은 군사 및 구조용 장비로 연구되고 있다.


      3. 벽 타기 능력 – 인간이 유리창을 기어오를 수 있을까?

      거미는 발바닥에 있는 미세한 털 구조(setae)를 통해 분자 간 인력인 반데르발스 힘을 이용해 벽이나 천장을 기어오른다. 이 원리를 모방한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도마뱀붙이(게코)다. 게코의 발에는 수백만 개의 미세돌기가 있어 접촉 면적을 극대화하고 강력한 부착력을 발휘한다.

       

      MIT와 스탠퍼드 등에서는 이를 모방한 게코 글러브를 개발하여, 실제로 사람도 유리벽을 기어오르게 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표면적이 커야 하며, 전신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발 또는 손의 표면적이 비정상적으로 커져야 한다. 이는 인체 비율상 매우 비효율적이다.

       

      즉, 거미처럼 맨손 맨발로 벽을 기어오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손과 발이 진화적으로 완전히 재설계되어야 한다. 영화처럼 손바닥만으로 고층을 기어오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설정이다.


      4. 반사 신경과 근력 강화 – 진짜 가능할까?

      스파이더맨은 총알을 피할 만큼 빠른 반사 신경과, 자동차를 들어올릴 만큼의 근력을 지닌다. 인간의 반응 속도는 평균 0.2~0.3초이며, 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하려면 신경전달 속도의 비약적 향상이 필요하다.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은 축삭돌기와 시냅스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생리학적으로 속도에 제한이 있다. 이를 넘어서려면 전기 신호 전달 매개체 자체의 구조적 개량이 필요하며, 이는 생물학적 진화 수준의 변화 없이는 어렵다.

       

      근력 역시 마찬가지다. 근육이 낼 수 있는 힘은 단면적에 비례한다. 인간의 골격과 근육 구조로는 절대 수 톤의 무게를 버틸 수 없다. 거미처럼 강인한 외골격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인간은 연약한 내골격 구조다.

       

      다만,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특정 근섬유를 비정상적으로 발달시키는 실험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며, 스파이더맨처럼 전체 신체가 강화되는 방식은 실제 생리학과는 거리가 멀다.


      5. 스파이더 센스 – 예지 능력인가, 감각의 극대화인가?

      스파이더맨의 상징 중 하나는 바로 "스파이더 센스"다. 위협이 다가오면 반사적으로 이를 감지하고 회피하는 능력인데, 이는 마치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제6감처럼 묘사된다.

       

      과학적으로 보면 이는 감각 기관의 과민 반응 또는 감각 통합 처리 속도의 극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일부 동물은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다:

       

      • 물고기는 측선기관으로 수압 변화를 감지한다.
      • 상어는 전기장을 감지해 먹잇감을 찾는다.
      • 는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을 잡는다.

       

      하지만 이들 감각은 특정 자극에 특화된 것이며, 인간이 모든 감각을 동시에 향상시킨다는 것은 신경계 과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같이 묘사되는 스파이더 센스는 과학보다는 초자연적 능력에 가깝다.


      6. 유전자 개조 인간의 윤리와 현실

      만약 스파이더맨처럼 유전자가 변형된 인간이 탄생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로 확장된다. 생명공학이 인간 능력을 증강시키는 데 사용될 경우, "인간다움"의 경계는 무너지게 된다.

       

      • 누가 이런 능력을 누릴 수 있는가?
      • 사회적 불평등은 더 심화되지 않는가?
      • 비자발적 유전자 조작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현재도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유전자 도핑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장차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의 문제까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스파이더맨의 설정은 단지 과학적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정의를 묻는 생명윤리적 도전이기도 하다.


      마치며: 스파이더맨은 생물학적으로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파이더맨』은 현재의 생물학과 생명공학 수준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거미 유전자가 인간에게 융합되어 복합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일은 생리학적, 유전학적으로도 난망한 일이다. 거미줄 분사, 벽 타기, 강화된 반사 신경과 근력, 스파이더 센스는 각각 흥미로운 생물학적 원리를 갖고 있지만, 모두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은 과학보다는 상상력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실제로 연구가 진행 중인 생체 모방 기술, 인공 거미줄 생산, 유전자 치료 기술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생물학적 영감을 제공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과학은 때때로 SF에서 영감을 얻고, SF는 현실 과학의 꿈을 미리 상상한다.


      다음 이야기 예고  『아바타』 속 생태계는 가능한가?

      다음 글에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SF 대작 『아바타』를 통해 외계 생물학과 생태계를 탐험합니다.

      『아바타』 속 설정이 현실에서 어떤 생물학적 가능성을 내포하는지, 그리고 인간은 과연 외계 생명체와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과학적으로 파헤쳐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