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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오브 어스』 속 좀비 곰팡이, 정말 인간을 조종할 수 있을까? – 오피오코르디셉스의 생물학
“진화는 단 한 번의 변이로도 모든 것을 바꾼다.” – 『라스트 오브 어스』
HBO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는 좀비 아포칼립스물 중에서도 독보적인 과학적 리얼리티로 주목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좀비물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나 방사능으로 생겨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피오코르디셉스(Ophiocordyceps)'라는 실제 곰팡이를 기반으로 설정이 구성됩니다. 이 곰팡이는 현실에서 개미를 감염시켜 뇌를 조종하고, 기생 생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곰팡이가 인간에게도 감염될 수 있을까요? 실제 생물학에서는 어디까지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좀비 곰팡이 설정을 바탕으로 곰팡이 감염의 실제 메커니즘, 신경 조작 가능성, 진화론적 가능성, 그리고 인류 보건학적 위협에 대해 생물학적 관점에서 탐구해보겠습니다.
1. 오피오코르디셉스란 무엇인가? – 곤충 조종 곰팡이의 실체
오피오코르디셉스(Ophiocordyceps unilateralis)는 주로 열대우림에서 발견되는 곰팡이로, 개미와 같은 절지동물을 숙주로 삼습니다. 감염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포자가 개미의 외피에 부착되어 침투
- 체내로 들어간 후 혈림프 내에서 성장
- 중추신경계를 점령하고 행동을 조작
- 개미가 높은 위치로 올라가도록 유도
- 개미가 입으로 잎이나 줄기에 고정되도록 함 ('죽음의 물어짐')
- 개미가 죽은 후, 곰팡이는 개미의 머리에서 자실체를 형성하여 포자를 퍼뜨림
이 행동은 숙주의 '행동 조작'으로 잘 알려진 생물학적 현상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병원체 감염과는 달리, 신경계와 행동을 조작하는 고도화된 기생 전략입니다.
2. 행동 조작 기생생물 – 자연계의 '좀비 메커니즘'
오피오코르디셉스 외에도 여러 생물들은 숙주의 행동을 조작하는 놀라운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톡소플라즈마 곤디이 (Toxoplasma gondii)
- 고양이에게 최종적으로 감염되기 위해, 설치류의 뇌에 침투하여 고양이에 대한 공포를 억제하고 오히려 선호하게 만듭니다.
- 인간에게도 감염되며, 일부 연구에서는 행동 특성(충동성, 리스크 선호 등)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2) 리베로디움 덴드로포라 (Leucochloridium paradoxum)
- 달팽이를 감염한 후, 눈자루에 유충을 퍼뜨리고 눈이 촉촉한 애벌레처럼 펄럭이게 만듭니다.
- 새가 이를 애벌레로 착각해 먹으면, 기생충은 새의 장에서 성충이 됨.
(3) 광견병 바이러스 (Rabies virus)
- 뇌를 감염해 광분 상태를 유발, 공격성과 타액 배출을 증가시켜 다른 동물을 물게 만듭니다.
- 바이러스는 신경계를 따라 이동하며 침샘을 점령, 물림으로 전염됩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생생물은 생존을 위해 숙주의 행동을 조작하며, 이는 곧 '좀비적 행동 조작'이 자연계에서도 진화 가능한 전략임을 보여줍니다.
3. 오피오코르디셉스가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오피오코르디셉스는 곤충 특이적(fungus-insect specificity)입니다. 즉, 곰팡이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은 개미의 생리와 면역계를 대상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인간에게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체온: 인간은 36.5℃로 곰팡이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온도입니다.
- 면역 반응: 인간의 선천면역 및 적응면역계는 곤충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 세포 인식: 곰팡이는 특정 숙주세포를 인식하여 침투하는데, 인간 세포에는 결합 단백질이 다름.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곰팡이가 식량산업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지고, 변이를 통해 고온 내성이 생긴다는 설정을 제시합니다. 이 설정은 허구이지만, 진화 가능성에 기반한 '과학적 상상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만약 인간에게 곰팡이가 감염된다면 – 가능한 메커니즘은?
곰팡이 감염이 인간에게도 신경계 영향을 미치려면 다음과 같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1) 열 내성 획득
진화 또는 유전공학을 통해 곰팡이가 고온에서도 생존 가능한 구조를 갖추는 경우. (일부 진균은 37℃에서도 생존 가능)
(2) 혈뇌장벽(BBB) 통과
곰팡이 입자 또는 그 대사산물이 혈뇌장벽을 통과하면 뇌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크립토코쿠스(cryptococcus)라는 진균은 실제로 뇌수막염을 유발합니다.
(3) 뉴런 조작 유전자 발현
뇌세포의 특정 수용체에 작용하여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에 영향을 주면, 감정 및 판단력, 공격성 등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현실적 가능성은 낮지만, 이론적으로는 진화, 유전공학, 환경변화가 합쳐지면 이러한 메커니즘이 등장할 여지는 있습니다.
5. 곰팡이 감염의 실제 위협 – 이미 존재하는 치명적 진균들
현대의학에서도 곰팡이 감염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실제 존재하는 위협적인 진균들입니다:
(1) 칸디다 아우리스 (Candida auris)
- 병원 내 감염을 일으키는 다제내성 곰팡이
- 고온, 건조 환경에서도 생존 가능
- 면역저하자에게 매우 치명적임
(2)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 fumigatus)
- 폐에 감염되어 아스페르길루스증 유발
- 면역억제 환자에서 치사율이 높음
(3) 무좀, 백선도 곰팡이
- 피부를 침범하는 진균 감염이지만, 드물게 깊은 조직까지 침범하는 경우도 존재함
즉, 곰팡이는 무해한 존재가 아니며, 일부는 인간에게 실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이런 현실적 위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6. 좀비 곰팡이의 진화 가능성 – 생물학적으로 가능한가?
진화생물학 관점에서 오피오코르디셉스가 인간을 숙주로 삼기까지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 유전자 변이 및 자연선택: 고온 적응, 인간 세포 인식 단백질 발현 등 유전적 변화
- 중간 숙주의 확보: 인간과 곤충 사이의 공통 숙주를 거쳐 점진적 숙주 확장
- 수억 년의 시간 또는 인위적 유도: 자연적 진화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함. 단, 유전자 조작이나 실험실 사고는 빠른 변화 가능성을 가짐
이러한 진화는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극단적 시나리오로 상정하면 가능한 생물학적 상상력의 영역입니다.
7. 과학이 만든 공포 – 진짜 좀비의 탄생 가능성
『라스트 오브 어스』는 공포를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현실에서 존재하는 생물학적 존재를 통해 그려냅니다. 이점에서 다른 좀비물과 차별화됩니다.
- 전염병 = 곰팡이 포자
- 좀비 = 행동 조작된 감염자
- 전파 경로 = 곰팡이 균사, 입자
이러한 설정은 우리가 지금도 마주하고 있는 팬데믹 위협, 항생제 내성, 기후변화로 인한 병원체 확산 등과 닮아 있습니다.
마치며: 곰팡이는 언제든 진화할 수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체로부터 출발하여, ‘가능성의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실제로 곰팡이는 전 세계적으로 저평가된 병원체이며, 항진균제의 개발은 항생제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과 기후 변화, 과도한 산업화는 자연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병원체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점차 조성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화 속도보다 병원체의 진화 속도가 빠른 지금, ‘진짜 좀비’는 생각보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 『더 플라이(The Fly)』와 유전자 변형의 생물학
다음 편에서는 1986년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더 플라이』 속 '인간-파리 융합'이라는 기괴한 설정을 파헤칩니다. DNA가 전송되고 융합되는 과정이 과연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유전자 재조합 기술, 전송 중 오류, 그리고 생물체 정체성의 문제까지 생명공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더 플라이』의 생물학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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