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스크린 속 생물학>> : 더 플라이

clarajournal 2025. 5. 20. 09:57

생물학

 

『더 플라이』 속 유전자 융합, 과연 가능한가? – 생물학으로 본 유전자의 경계

“무언가가 나를 안에서 밀어내고 있어. 그리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 – 『더 플라이(The Fly)』

 

1986년,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 『더 플라이(The Fly)』를 통해 과학이 인간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작품은 과학자의 실험 중 사고로 인해 인간과 파리의 DNA가 융합되며, 점차 파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단순한 호러 영화가 아니라, 인간성과 생물학적 정체성의 붕괴, 과학과 윤리의 경계를 묻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더 플라이』 속 설정을 중심으로 유전자 융합이 실제로 가능한지, DNA 전송과 혼합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현대 생명공학에서 가능한 기술들과 비교하며 그 한계를 분석합니다.


1. 『더 플라이』의 설정 – 인간과 파리의 DNA 융합

영화의 주인공 세스 브런들 박사는 물체를 순간이동시키는 '텔레포드 장치'를 개발합니다. 실험 중 한 캡슐 안에 파리가 들어왔고, 기계는 인간과 파리의 DNA를 혼합하여 재구성합니다. 이후 주인공은 점차 신체와 행동이 파리처럼 변해가며 인간성을 상실합니다.

핵심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두 생물의 DNA 정보가 혼합
  • 혼합된 DNA에 따라 신체 구조가 재형성
  • 세포 단위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점차 전신으로 확산됨

 

이런 일이 실제 생물학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2. DNA 융합이란 무엇인가? – 기본 개념부터 이해하기

DNA 융합(fusion)은 두 개체의 유전정보를 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생물에서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이뤄집니다:

 

(1) 성적 생식

  • 정자와 난자가 융합하여 이배체(diploid) 세포를 만듦
  • 부모 양쪽의 DNA 절반씩 조합

 

(2) 유전자 재조합

  •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을 통해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획득

 

(3) 실험실 내 융합

  • 실험실에서는 이종 세포 융합(hybridoma) 기술로 두 다른 종의 세포를 물리적으로 융합시켜 단일클론 항체를 생산하기도 함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도 핵심은 세포 수준의 조합이며, 전체 유기체의 구조와 행동까지 급진적으로 바꾸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3. 인간과 파리의 DNA는 얼마나 다를까?

파리는 인간과 같은 동물계에 속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 게놈 크기: 인간 약 30억 염기쌍, 초파리 약 1.2억 염기쌍
  • 염색체 수: 인간 23쌍, 초파리 4쌍
  • 발생 구조: 인간은 내배엽, 외배엽, 중배엽에서 장기 발달. 파리는 다른 형태의 세포 분화 및 분절 구조.

 

결론적으로 유전자 조정 방식, 발달 유전자, 단백질 발현 메커니즘이 매우 다릅니다. 즉, 두 생물의 DNA를 물리적으로 섞는다고 해서 작동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닙니다.


4. 만약 유전자 융합이 가능하다면 – 가능한 경로는?

과학적으로 생물 간 유전자를 교환하려면 다음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1) 트랜스제닉 기술 (Transgenic organism)

  • 한 생물의 유전자를 다른 생물체 게놈에 삽입
  • 예: 파리의 형광 유전자를 생쥐에 삽입하여 형광 생쥐 제작
  • 하지만 보통 단일 유전자 수준의 삽입이며, 생물 전반의 특성을 바꾸지는 않음

 

(2)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CRISPR-Cas9)

  • 특정 염기서열을 절단하고, 다른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교체
  • 특정 유전형질을 조절할 수 있지만, 다종 간 전체 유전자 혼합은 여전히 어려움

 

(3) 키메라 생물 (Chimera)

  • 두 생물의 초기 배아세포를 결합하여 혼합된 개체를 만드는 방법
  • 실험적으로 쥐-인간 키메라, 돼지-인간 키메라 등의 연구가 있으나, 정식 개체로 자라도록 하는 데는 한계 존재

 

즉, 현실에서 가능한 유전자 융합은 부분적 유전자 전이 또는 특정 기능 삽입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영화처럼 생물 전체가 융합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5. 영화 속 유전자 융합의 문제점 – 생물학적 불가능성

『더 플라이』에서 묘사되는 유전자 융합 과정은 몇 가지 심각한 생물학적 허점을 가집니다:

 

  • DNA 재구성의 주체가 없음: DNA 혼합 후 어떤 기준으로 새로운 유전체가 구성되는가?
  • 발달 계획의 충돌: 인간과 파리는 서로 다른 발달 경로를 갖기에, 혼합되면 정상적인 장기 생성 불가
  • 면역계의 자가공격: 이종 단백질이 발현되면 면역계가 자기 조직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음

 

이런 요소들은 현실에서는 개체 생존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영화의 설정은 과학적으로 매우 허구적입니다.


6. 그럼에도 가능한 '진화적 상상력'은?

그렇다면 『더 플라이』가 전혀 의미 없는 공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과학적 상상력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1) 유전자의 기능 전이

  • 특정 유전자가 행동, 외모, 감각기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맞음
  • 파리의 페로몬 감지 수용체를 인간에 이식하면 감각의 변화가 이론상 가능

 

(2) 후성유전학 (Epigenetics)

  • 유전자는 바뀌지 않아도, 유전자 발현 방식이 변화하면 다른 표현형이 가능함
  • 환경에 따라 DNA의 일부가 활성화/비활성화될 수 있음

 

(3) 생체 조작의 윤리 문제 제기

  • 영화는 유전공학이 인간 정체성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줌
  • 과학이 능력의 한계를 넘을 때, 윤리와 책임이 따라야 함을 경고

7. 현대 과학에서 가능한 '진짜 더 플라이' 실험은?

실제로 인간과 곤충 간 유전 정보를 교환하는 연구는 존재합니다:

 

예시 1: 형광 단백질 유전자 (GFP)

  • 해파리의 GFP 유전자를 파리, 생쥐, 인간 세포에 삽입
  • 유전자의 발현 가능성은 있지만, 전체 특성이 변하는 건 아님

 

예시 2: 파리 모델을 통한 인간 질병 연구

  • 인간 유전자의 일부를 초파리에 삽입하여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연구 모델로 사용

 

이러한 연구는 유전자의 기능을 실험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영화처럼 ‘인간이 파리화되는’ 것은 불가능한 허구입니다.


마치며:『더 플라이』는 불가능한 생물학, 그러나 중요한 경고

『더 플라이』는 과학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유전자 변형 기술의 위험성, 인간 정체성의 붕괴, 과학자의 오만과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 생물학적으로는 인간과 파리의 융합은 불가능
  • 기술적으로는 부분적 유전자 전이만 가능
  • 그러나 윤리적 메시지는 매우 현실적

 

이러한 이야기는 생명공학의 발전이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 『킹콩』과 초대형 생물의 생리학

다음 편에서는 영화 『킹콩』을 통해 거대 생물체의 생리학적 한계에 대해 탐구할 예정입니다. 실제 생물체가 20m를 넘는 크기로 존재할 수 있을까? 체중, 혈압, 뼈 구조, 대사율 등 다양한 생물학 지식을 통해 ‘거대함’의 경계를 분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