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생물학>> : 기생충
『기생충』 속 '기생'은 정말 기생일까? – 사회적 은유와 실제 기생 생물의 전략들
“계획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사회적 불평등을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으로, 전 세계 관객의 공감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이 부잣집에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은 매우 영리하게 설계된 전략적 침투로, 마치 자연계에서 기생 생물이 숙주에 접근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생충』이라는 영화 속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 실제 생물학에서 '기생'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고 작동하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1. '기생'이란 무엇인가 – 생물학적 정의
생물학에서 기생(parasitism)은 한 생물이 다른 생물(숙주)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며,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상호작용을 말합니다. 기생자는 종종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독립적으로 생존이 어렵다
- 숙주의 자원(피, 조직, 행동 등)을 이용한다
- 숙주에 해를 끼치지만 즉시 죽이지는 않는다
- 때로는 숙주의 행동, 호르몬, 신경계를 조작한다
기생은 상리공생(mutualism), 편리공생(commensalism)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생물 간 상호작용의 한 유형입니다.
2. 영화 『기생충』 속 기생 메타포 분석
영화 속 '기생'은 사회적 위계를 암시합니다. 기택 가족은 부잣집에 들어가 점차 일자리를 차지하고, 공간을 공유하고, 결국은 집에 눌러앉게 됩니다. 여기서 '기생'이라는 은유가 성립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체 생계 유지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부유층 자원에 의존
- 체계적으로 숙주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적 방어기제를 우회
- 숙주의 면역반응(즉, 부유층의 경계심)을 피하는 전략 사용
- 숙주 내부의 다른 기생자와의 경쟁 (지하실 가족과의 충돌)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실제 기생 생물의 행동 전략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3. 실제 자연계의 기생 생물들 – 영화와의 비교
이제 영화 속 은유를 현실 세계의 기생 생물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1) 리슈마니아 (Leishmania)
모래파리를 통해 전염되는 원생동물 기생충입니다. 면역세포에 침투하여 안에서 증식하면서 면역계를 회피합니다. 기택 가족이 부유층의 눈을 피해 스며드는 전략과 유사합니다.
(2) 쿠쿠새 (Cuckoo bird)
다른 새의 둥지에 자기 알을 몰래 낳아 다른 새가 부화·양육하게 만듭니다. 숙주는 이를 자신의 새끼로 착각합니다. 영화에서 기우가 가짜 학위증으로 가정교사로 들어가는 장면과 비슷한 기만적 전략입니다.
(3) 에메랄드 바퀴벌레 말벌 (Ampulex compressa)
이 말벌은 바퀴벌레의 뇌를 조작해 도망가지 못하게 한 뒤, 알을 낳고 애벌레가 바퀴벌레 안에서 자랍니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안의 '뇌'를 조작하는 듯한 방식과 비견할 수 있습니다.
4. 기생 생물의 전략: 침투, 은닉, 조작
기생 생물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전략을 통해 숙주에 접근하고 정착합니다.
- 화학적 위장: 숙주의 면역계를 피하기 위해, 자신을 숙주 세포처럼 위장
- 행동 조작: 숙주의 행동을 바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
- 공간 은닉: 면역 반응이 약한 부위(뇌, 내장, 간 등)에 자리잡음
- 번식 이용: 숙주의 번식 시스템을 빌려 자손을 퍼뜨림
영화 속 기택 가족 역시 사회 시스템의 틈을 파고들어, 정체를 숨기고, 부잣집의 사회적 ‘면역체계’를 피해 내부화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5. 인간 사회에서도 기생은 존재하는가?
생물학적으로는 인간 간의 기생을 정의하기 어렵지만, 사회학에서는 '기생적 구조'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 경제적 기생: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며 자신은 기여하지 않는 구조
- 정서적 기생: 한 사람의 감정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모시키는 관계
- 정보 기생: 타인의 지식과 성과를 지속적으로 베끼거나 이용
기택 가족의 행동은 사회적으로는 비도덕적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매우 효율적인 기생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6. 숙주-기생체 관계의 진화
기생자와 숙주는 끊임없이 적응과 진화를 반복합니다. 이를 공진화(co-evolution)라 부르며,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 숙주는 더 강한 면역, 경계 전략을 발전시킴
- 기생자는 더 정교한 은폐, 침투, 조작 전략을 발전시킴
- 일부 기생자는 결국 숙주와 공생 관계로 변화하기도 함
영화에서도 박 사장 가족은 처음엔 기생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점차 불쾌함과 위험을 느끼게 되고 결국 충돌하게 됩니다. 이는 숙주-기생체 관계에서의 긴장과 파국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7. 생물학이 드러내는 인간 사회의 본성
『기생충』은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고발하면서도, 생물학적 현실의 메타포를 차용해 훨씬 더 강렬한 서사를 구성합니다. 인간도 생태계 일부로서, 경쟁하고 침투하고 생존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현실적입니다.
기생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진화적으로 생존을 위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 사회 역시 복잡한 생태계의 일부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 『라스트 오브 어스』 속 좀비 곰팡이의 현실성
다음 편에서는 좀비를 또 한 번 다뤄봅니다. HBO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의 좀비는 곰팡이에 의해 조종당하는 생물입니다. 오피오코르디셉스라는 실제 존재하는 곰팡이가 인간에게 감염되면 어떻게 될까? 이 드라마의 설정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다음 글에서는 곰팡이 감염의 생물학적 메커니즘, 숙주 조작 사례, 그리고 '진화 가능성'까지 포함해 『라스트 오브 어스』 속 좀비 곰팡이의 과학적 기반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